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서원이란?

 

<두 번째 이야기>


사무엘상 1장 10절~11절에 이렇게 하나의 서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자식이 없음을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서원하여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하나님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 하겠나이다”라고 서원을 합니다.


아들을 낳으면 그를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하나의 서원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6장 2절 이하를 보면 나실인의 삶에 대하여 잘 나와 있습니다.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머리를 자르지 않으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드려진 자 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실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은 쾌락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독주는 어떻습니까? 독주에 취하여 사는 삶은 허랑방탕하게 세월을 허비하며 사는 삶입니다. 탕자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세상사는 데만 사용하며 사는 삶입니다.


또 나실인은 자기가 자기 머리를 자르지 않습니다. 그 의미는 자기 머리를 자기가 주장하여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나실인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망에 이루게 하는 죄와 떨어져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나실인의 삶이요 지금 우리들이 살아야 될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서원은 그의 자식이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 세상쾌락과 떨어져 사는 삶 죄와 떨어져 경건한 삶을 사는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20절에는 야곱의 서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가는 길을 지키시며 먹을 양식과 옷을 주사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고 서원한” 내용 입니다.


야곱의 서원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내가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는 서원과 하나님의 전을 지어드리겠다고 서원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선택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만한 자격과 조건도 없는데 말입니다. 독생자 예수를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행하실 일을 믿는 자 마다 성령께서 임하셨고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서원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십분의 일은 전체를 대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분의 일을 드리므로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이 서원이 되야 하며 야곱이 십분의 일을 드려듯이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것이 우리의 서원이 되야 합니다.


우리의 올바른 서원은 하나의 서원처럼 나 자신과 자식들과 내 이웃을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서원 밖에 없습니다. 전도할 내 이웃이 있다면 벌써 서원을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21절에 너희가 서원 하였으면 그 서원을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것을 너희에게 요구 하시며 더디 드릴 때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서원을 얼마나 바라셨기에 반드시 요구하시겠다고 말씀하셔겠습니까? 그것도 죄가 된다고 강하게 말씀하시기까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독생자 예수까지 내어 놓으시기 까지 우리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서원을 빨리 드려야 합니다. 망서릴 이유가 없습니다.


레위기 22장 18절~2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함께 하는 자가 서원제나 낙헌제로 번제를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때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리며 또 21점에 서원한 것을 갚으려고 자의로 예물을 드릴 때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하나님께 드릴 때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구약 때 번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흠 없는 소나 양으로 드리는 것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흠투성이 밖에 없는 자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볼 때 눈먼자 상한자 마귀에게 자체를 베임을 당한자입니다. 거기다 종기, 괴혈병등 도저히 열납 될 수 없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서원인 나실인처럼 살 수 있겠어요? 잠시 부분적으로는 나실인처럼 살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나실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야곱의 서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있지만 더럽히지 않고 살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움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듯이 우리 인생을 온전히 드릴 수 있습니까? 흠 있는 자는 온전히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습니다. 마귀에게 지체를 베임을 당한자이기 때문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흠 없는 화목제물이시며 번제물이신 예수로 만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예수와 함께 죽었으며 의에 대하여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산자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누가 계십니까? 주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흠 없으신 예수님께 의지하며 그 분의 이름으로 전도하여 나실인들을 서원제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더렵혀진 성전을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거룩하여 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령 충만하여 십일조를 드리듯이 우리 삶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서원제의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작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작정을 여러 번 하였지만 작정한 대로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작정과 서원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작정은 성경에 없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건축을 하면서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리하게 작정을 해 놓고 하나님께 해결해 주실 것을 기도 합니다. 벌써 작정한 동기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작정해 놓고 율법에 종이 되어 저주받을 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지키려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욕심에서 일어난 아주 어린아이 같은 신앙 받게 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뜻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벌 받을까봐 벌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심보를 같고 있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귀엽게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을 상습적으로 써 먹는다면 그것은 책망 받을 일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커 은혜를 보답하듯이 하는 것은 세상 방법입니다. 그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내 것이 없기 때문에 은혜를 보답할 능력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열납 되지 않는 신앙생활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멘-

by X-friend | 2010/04/23 12:1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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