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덮개

 

마지막이야기


일단 붉은 물들인 수양 가죽에서 구원은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신앙여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구원 얻은 그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구원’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구원 얻은 사람의 신앙이 성숙되어가고 성화되어 가는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고 하니 죄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한가 하는 문제로 나타납니다. 죄에 대해서 민감할수록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 염소 털 안에 있는 것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흰색)의 네 가지 색깔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든 앙장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색깔은 예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앞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룹은 천사를 말하는데 천사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친위대입니다. 그러니 그룹이 수놓아져 있다는 얘기는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볼 때 네 겹으로 된 성소 덮개는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고 점점 더 죄를 멀리하며 신앙이 깊어져서 결국 하나님을 직접 뵙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소 내부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바라보는 천장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스테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5~56)


스테반의 순고 직적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 얘기를 하고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사실 그때 스테반이 본 광경이 성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맨 정신으로는 못했을 것입니다.


한때 그 신앙이 염소 털에만 머물렀던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욥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욥을 인내의 화신으로 알고 있는데 성경에서 욥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의 인내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욥기의 끝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욥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10명이나 되던 자식을 다 잃고 기와장으로 자기 몸을 긁어야 할 만큼 독한 악창에 시달렸습니다. 욥이 이 어려운 상황에서 원망을 했느냐 안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극한 상황에서 무엇을 깨달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어려움을 주셨겠어요. 미워서 그러게 하셨겠어요. 아니면 믿음이 얼마나 좋은가 보실려고 하셨겠어요.

그런 측면도 있었겠지만 그것 보다는 욥과 하나님의 관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욥은 잔치를 베풀고 나면 혹시 자식들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범한 죄가 있지 않나 싶어서 번제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욥은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죄를 지으면 벌주시며 잘하면 상 주시는 하나님으로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욥이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던 수준에서 눈으로 뵙는 수준까지 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고급한 수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는 외모보다는 성품입니다. 인격이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이 됩니다. 아무리 외모가 출중하더라도 인격에 문제가 있으며 그 사람의 이미지가치는 형편없어지는 것입니다.


앙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의 네 가지 색깔로 하나님의 속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홍색실이 주는 의미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악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대적 했어도 그리스도께서 희생과 헌신의 속죄의 피가 있어 구원에 이룬 것입니다. 용서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내 형제의 잘못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아름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자주색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 그리스도의 왕권을 행하고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죄인들에게 죄를 사함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역할입니다. 지금 우리가 전도하는 것이 바로 그 역할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흰색은 그리스도의 흠 없으신 완전한 의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운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원 받고 난 후에도 죄를 짖고 살고 있지만 흰색 같이 흠 없으신 의로우신 분이 함께 동행하여 주시므로 의롭다함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1:18)


청색실은 무한히 넓은 우주 공간에 펼쳐진 하늘의 색깔을 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넓으신 신성을 나타냅니다. 이와 같이 청색은 천국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청색이 금색과 동격이라고 주장도 합니다. 그 이유는 종종 하늘에 뇌운이 떨어지고 폭풍우가 일어나지만 그때에도 청명한 하늘의 색깔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가리워져 있는 것으로 얼마 후 햇빛과 함께 다시 하늘의 본연의 색깔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청색은 변하지 않는 금 색깔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성소의 값 비싼 금색 용기들은 범궤를 제외하고는 모두 청색 천으로 덮었습니다. 청색은 한 없이 펼쳐진 창공과 같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을 나타냅니다. 이 은혜로 청색실 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천국을 얻었습니다. 이제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녀의 지위는 얻었지만 아직도 수준은 세상 죄인 수준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변화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만 신의 성품에 참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하나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품이 다르면 같이 살 수 없습니다.



by X-friend | 2010/09/27 12:3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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