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길 원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썩어 마시지 못하자 모세에게 원망을 하자 모세가 그 원망을 듣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켜 한 나무를 가져다가 그 물에 던지라 하시니 모세가 던져던이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날로부터 한 달째 되는 두 번째 달 십오 일이었는데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 합니다. 얼마 전에 먹지 못하던 물을 먹게 해 주었는데 또 믿지 못하여 날리 칩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하나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굶어 죽게 하는 도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 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을 배불리시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원망하는 그 소리를 들으셨음이라


출애굽기 16장13절에 분명 그 날 저녁에 말씀대로 메추라기가 와서 진을 덮이고 아침이 되자 이번에는 이슬이 천막 주위를 덮었습니다.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서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들에게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다.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로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메추라기가 와서 진을 덮을 때는 저녁에 덮었습니다. 그런데 만나가 내릴 때에는 아침때였습니다. 그것도 이슬이 내릴 때 함께 만나도 내렸습니다. 이슬이란 광야 사막에서는 유일한 생명수가 됩니다.


사막이며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만나 즉 말씀을 받을 때 생명수와 함께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갈급함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것을 상징하는 메추라기가 내릴 때는 저녁때라는 것입니다. 저녁은 밤이 시작하는 때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슬과 만나가 내릴 때 밤에 내렸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슬이 내릴 때는 밤이지만 새벽이 가까올 때 내립니다. 곧 새벽이 온다는 소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상징하는 만나가 내릴 때는 아침때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으면 어두움은 겉치고 밝은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다시 출애굽기 16장17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낮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십분의 일에 말씀드렸듯이 만나는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 만나를 항아리에 한 오멜을 즉 십분의 일을 담아 대대로 간수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멜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 합니다.


출애굽기 16장16절에 만나를 거두는데 한 사람이 한 오멜씩 거두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씩 거둔 기준은 한 오멜씩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뜻 입니까? 구원은 오멜이신 예수그리스로 구원에 이룬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기준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구원에 이루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으면서 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누구를 소개하며 인도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씩 한 오멜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한데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만나인 말씀을 많이 안다고 구원이 더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충만한 자나 부족한 자도 구원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장성한 분량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오직 예수로 만이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는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아는 자는 많이 아는 것만큼 전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는 전하고 싶은 열정과 의욕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것은 욕심을 갖게 되어 있어 혼자만 가질려고 하지만 말씀은 가진  것만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적게 가진 자는 적게 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말이 많아집니다. 생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부짖으면서 만나 외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주신 것인데 먹을 것이 만나 밖에 없다고 원망을 하니 진노 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11장19절~20절에 하나님의 분노의 심정이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나님께서 바람을 일으키며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하시니 백성이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아 먹는데 고기가 아직 이사이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들이 죽어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실은 하나님께서 만나뿐만 아니라 메추라기 까지 준비해 놓으시고 먼저 만나를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즐겨했다면 메추라기까지 주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고기가 아직 이사이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쳐 죽이신 것입니다.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물질을 얻어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말씀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새벽예배에 참여 하시는 분들 중 하루 삶을 시작하면서 말씀으로 충만하기 위해 오시기보다 세상 것 메추라기를 얻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메추라기를 구한 것이 응답이 안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켜 주고 거듭나게 하시며 세상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에 먼저 말씀을 주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세상 메추라기를 먼저 주어 보세요. 제대로 신앙생활 하겠어요. 먼저 말씀으로 거듭나 천국을 소망하며 살때 세상 것을 다스릴수 있을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은 얻은 것 같은데 질병에 시달리며 어떤 어려움으로 물질을 즐겨 볼 겨를도 없는 것입니다. 고기를 씹어 보지도 못한 것입니다. 고기가  이사이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징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으로 말씀에 충만케하여 귀를 열어 주시고 마음 문을 열게 하여 참다운 신앙인으로 인도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감당하신 일을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벌써 용서하고 계시면서 오래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by X-friend | 2010/11/05 11:59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xlkh.egloos.com/tb/263722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