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1일
지혜자나 우매자의 당하는 것이 일반
-ml:namespace prefix = o />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 노년에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지혜롭게’ 산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대부분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은 자신의 지혜로운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 자랑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솔로몬은 이같이 고백하고 있을까요?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둠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심중에 이르기를….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전2:12~17)
여기서 말하는 ‘우매자’란 어리석은 자, 혹은 모자라는 자, 바보 같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행위를 하는 자 악인’ 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의 기록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 미련한 자, 우매자는 행위를 낙으로 삼으며,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당장 나타내며 다툼을 일으키고 매를 자청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잠10:23, 12:6, 18:16)
그렇다면 지혜자란 어떤 자입니까? 화를 내고 싶어도 참는 자, 남을 욕하고 싶어도 참는자, 그래서 화를 내고 욕하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인 줄 알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자, 이런 분들 지식인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들 성품이 고귀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손해를 본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그런 지혜자를 두고 본문은 세상에 대하여 ‘눈이 밝은 자’(전2: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두 부류의 삶으로 나뉘어 집니다. 그러면 과연 이 두 부류 중 어떤 사람이 올바른 가요?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지혜자가 올바르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매자는 악을 행하는 자라면 지혜자는 선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는 사실입니다.”(전2:14) 우매자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기 때문에 당연하거니와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아가는 지혜자도 어려움을 만나는 것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웃의 칭찬을 듣는 착한 사람일지라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악한 사람이야 당연하거늘 지혜롭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도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하늘도 무심하시다’라고 원망스럽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솔로몬도 “우매자의 당하는 것을 나도 당하거니와 내가 어찌하여 지혜를 더하였던고…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전2:15~17)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기보다 먼저 그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그것은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죄인' 은 하나님을 떠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자, 마귀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온갖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실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지혜자나 우매자가 일반으로 당하는 고통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떠난 죄로 말미암은 것인데 의문스러운 것은 이세상에 착하게 훌륭하게 사는 자들도 왜 죄인처럼 어려움을 겪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이 틀린다는 사실입니다. 즉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지만 하나님은 겉으로 아무리 착한 것이 드러나도 속이 더러우면 죄인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당대 훌륭한 사람들로 존경 받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십일조를 내고, 구제하며 때를 따라 금식하므로 규례를 잘 지키며 시장 등에서 사람들을 문안하고 위로하는 그야말로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는 최고의 인격자요 지혜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평가하시기를 한마디로 ‘평토장한 무덤’과 같다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들 안에는 탐욕과 악독을 감추고 겉으로 선하게 보여 사람들로부터 ‘훌륭한자’ ‘지혜자’라 일컬음을 받는 그들을 그대로 책망하고 계신 말씀인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깨끗한 집과 더러운 집이라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깨끗한 집은 정말로 쓰레기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거기에도 쓰레기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깨끗한 집이란 쓰레기가 쓰레기 통속에 들어가 있는 집이고 더러운 집이란 쓰레기가 널려 있는 집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오해를 하는가 하면 인격을 가진자요, 훌륭한 자요, 지혜로운 자들은 마음에 ‘더러운 생각이 안나온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허물이 들어나면 뉴스에 나오고 난리가 납니다. 그들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악된 생각을 눌러 산다는 것입니다. 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악한 생각을 행위로까지 옮기지 않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정리해 보면 우매자이든 지혜자이든 모두 죄인입니다. 다만 우매자는 그 마음의 것을 밖으로 드러내 보인다며 지혜자는 나쁜 것을 감추고 선하게 대처하며 살았을 뿐인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생들이 죄 가운데서 잉태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죄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결코 살면서 의인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누가 죄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죄를 지으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인생을 두고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떤 검보다 예리하며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여… 오직 만물이… 벌거 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리라”(히4:12)라고 하심 에서도 우리의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감 출수 없음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의인이라 자신하는 자라도 밝고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누구라도 죄인인 것이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혜자이든 우매자이든 모두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나 우매자나 당하는 것이 일반” 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관심해 볼 사실은 하나님은 오히려 지혜자보다 우매자가 하늘나라에 가깝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매자는 자신이 죄인인지 알고 쉽게 회개 할 수 있는 자이나 반면에 지혜자는 속으로 죄를 감추고 있는 자이므로 회개 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잘 알수 있지 않습니까? 지혜자라고 지칭하는 바리새인은 착하게 의롭게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지만 세리들은 “내가 죄인입니까”라고 고백하며 가슴을 치고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이둘 증 누가 하늘나라에 가깝겠습니까? 세리나 바리세인이나 하나님 보실 때는 일반으로 죄인들 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세리가 오히려 하늘나라에 가까운 자이며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여”로 책망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은 바로 이 같은 사실을 깨닫고 우매자나 지혜자나 당하는 것이 일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라고 결론 짓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 아 멘 -
# by | 2011/10/21 16:50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