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은 자살이 있을까?

지난번 말씀에 우매자와 지혜자도 고난을 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죄사함 받은 신앙인들도 고난 받기는 우매자나 지혜자처럼 일반 같기만 합니다. 죄사함을 받았는데도 고난 받는 다는 것이 일반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받은 죄의 대가는 무엇입니까? 우선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부터 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지만 사 백년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출애굽사건을 파헤쳐 보면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실은 열가지 재앙까지 내릴 필요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열 가지 재앙을 차례로 내리신 것은 바로왕이 생각보다 강해서 하나하나 더 강한 것으로 압박하신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해 주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였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갈라 주셨고 광야에 접어들어 와서는 더욱 하나님 없이는 살수 없는 환경으로 인도 하십니다. 낮에는 살인적인 더위와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에 시달리는 곳 이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심이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합왕과 엘리야에 대한 것입니다. 아합왕의 죄악으로 인하여 수 년동안 기근이 들게 하셨다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제 비를 내리시겠다고 하시므로 엘리야가 백성들과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너희 신이 진짜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내가 섬기는 신이 하나님이신지 송아지를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불을 붙이지 않고 신에게 구하여 불을 내려 번제물을 태우는 신이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 하자고 제의 한 다음 너희들이 숫자가 많으니 먼저 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응답이 없자 정오에 이르러서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너희 신이 지금 묵상하고 있는지 아니면 춤바람이 나서 가출을 했는지 아니면 그가 낮잠을 자고 있는지,자고 있으면 깨워야 할 것인지 빨리 결정을 하라 하면서 약을 올리며 조롱을 합니다. 그러자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은 칼 과 창으로 자기의 몸을 자해를 하며 미친 듯이 떠들어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을 내려 번제물과 도랑의 물과 흙과 돌맹이 까지 싹 훓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비까지 내려 주시므로 엘리야는 힘을 얻어 아세라와 바알의 선지자 팔백오십 명을 기손 시내로 데려다가 거기서 다 죽여버립니다. 그 소식을 아합왕의 처 이세벨이 듣고 자기 신에게 맹세하여 엘리야를 꼭 죽이겠다고 쫓아오므로 엘리야는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은 커녕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가는 신세가 되어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원망하여 내 조상보다 낫지 못하니 자기 생명을 거두어 가라고 공갈 협박을 합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에서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엘리야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합니다. 머리 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어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하나님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시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 시사하는 내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팔백오십 명을 기손 시내에서 죽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비가 오게 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였지만 칭찬은 커녕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신앙인들이 자주 겪는 일들 입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큰 일을 감당하였지만 더 어려움이 겪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웃 사람들로부터 시험 받게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실망스럽고 분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 일은 두 번 다시 않하겠다고 누워 버립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지 없이 무얼 주십니까? 주의 종들을 보내시어 어루 만져 주시며 말씀을 주십니다. 숯불에 구운 떡은 바로 예수에 관한 말씀인 것입니다. 제단 숯불은 십자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 값을 치룬 예수님이 다시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성령에 담기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먹고 바로 누워 버리면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움직일 때 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 없이 말씀을 듣지만 듣는 것으로 은혜 받은 것으로 만족할 때 아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은 데로 움직일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 음식을 먹고 사십 주 사십 야를 호렙산을 향하여 갔다는 것은 즉 엘리야가 말씀으로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입니다. 사십이란 숫자는 인생의 숫자입니다. 사십 주 사십 야를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갔다는 것인데 이 의미는 성령이 충만하여 깨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깨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 대로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갈 때 깨어 있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호렙산까지 갈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 할 때 더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말씀을 주시기 위함이요 깨어있게 하시기 위함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인도하시기 위함이였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하루 아침에 열명의 자식을 잃어버리고 전 재산이 날라가고 온 몸에는 악창으로 고통에 있고 친한 친구들은 조롱과 책망을 하고 사랑하는 아내는 악담을 하며 떠나 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주셨을까요 딱 한마디로 표현하면 욥의 고백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 를 뵈옵나이다

 

욥은 복만 주시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환란과 고난이란 매로 인하여 다른 세계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귀로만 듣기만 하던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나를 양육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주종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 부자의 사랑 관계를 깨달은 것입니다.

 

복만 받을 때는 세상 의 관계처럼 주종 관계였기 때문에 항상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잘못 보일 때 혹시 신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갈까 봐 불안하기만 하였습니다. 욥기 1 4~5절에 잘 나와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명도 청하여 먹고 마셨는데 욥은 자식들이 잔치가 끝나면 그의 자식을 불러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혹시 자신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봐 무조건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은 거듭난 날 보다 육신의 생일을 중요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죄로 인하여 신이 노하여 모든 것을 앗아 갈까 봐 두려움으로 섬긴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주종관계의 관점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욥이 고난이란 매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게 하신 것도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신 것도 오직 믿음을 주기 위함이였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을 감당하였지만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적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있게 하여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호렙산 즉, 장성한 신앙 까지 가게 하신 것입니다.

 

욥에게 엄청난 환란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였습니다. 복만 받기 위해 불안한 주종관계에서 우리를 양육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아 한차원 높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눈을 열어 주신 것이였습니다.

 

세상에 우매자와 지혜자들은 환란과 고난이 오면 절망감으로 자살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고난은 절대 자살 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고난과 환란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소망과 미래가 있고 보람을 느끼는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과 상관없이 행복한 자인 것입니다.                                                        아 멘-

by X-friend | 2011/11/04 22:27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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