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환난후에

"그 날 환난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다음은 마24장29~31절의 말씀인데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성경의 표현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 합니다. 그 이유는 본문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읽어서는 뜻을 헤아릴 수가 없고 특별한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러 장르의 문학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천편일률적인 한가지 방식으로만 해석할 수 없으며 때에 따라서는 다양한 표현법을 알아야만 해석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입니다.

표현법의 종류는 대별하여 일상적 표현 형식인 서술법과 기교를 사용하는 수사법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상적 표현은 해석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되는데 이를 문자적 해석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율법서나 역사서 또는 서신서 등의 많은 부분은 일상적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누가 읽더라도 대부분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시가서나 예언서 그리고 율법서와 성문서라 할지라도 어떤부분은 일상적인 표현법으로 기록되지 않고 상징적인 표현법 등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할 때 필요한 해석방법이 바로 영적 해석인 것 입니다. 수사법은 그 종류가 다양한데 제일 흔한 수사법은 비유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법에는 또 다시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직유를 비롯하여 은유, 상징, 환유, 제유와 풍유등의 표현법이 있습니다. 이것들 중에서 성경의 중요한 비유법은 은유와 상징 입니다.

다시 마24장의 29~31절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는 표현법 중에서도 상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선 29절의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에는 과학적인 상식으로 볼 때 지구보다 큰 별들이 수없이 많으므로 지구상에 별이 떨어질 장소도 없을 뿐더러 만일 별이 단 한개라도 지구와 부딪힌다면 지구는 대폭발을 일으키며 완전히 가루가 되고 말 것 입니다.그 이후에는 지구가 없어졌는데 무슨 더 이상의 사건이 벌어지겠습니까?

그것을 우주진 (Star Dust) 으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해가 어두워지면 지구 표면은 서서히 냉각기로 들어가게 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만 계속될 것 입니다. 또한 모든 만물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할 뿐 아니라 자연의 모든 생물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먹이를 구하지도 못하고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상태에서 처참하게 죽어갈 것 입니다.

따라서 29절의 말씀의 뜻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29절은 한마디로 상징적 표현으로 보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해’ 와 ‘달’ 과 ‘별’ 은 구약의 많은 예언에서 ‘심판’ 때마다 등장하는 상징어 이기 때문입니다. 사 13:10에 나오는 말씀을 볼까요.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 이로다" 이 부분은 바벨론 멸망시에 일어날 극심한 심판을 묘사한 것으로, 앞으로 있을 종말론적인 최후의 심판에 대한 묘사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눅 2:22에서 ‘기록된 모든 것’ 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라고 한 것은 바로 구약의 모든 예언들을 가리키는 말 입니다. 이러한 상징들이 의미하는 것은 마지막 심판의 엄위에 대하여 인간이 느끼는 엄청난 두려움을 표현한 것 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든, 상징적으로 해석하든,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서부터 주님 오실 때 까지 어떠한 자세로 사는 것이 중요 합니다. 분명 마지막 심판날은 엄청난 두려운 날이 될 것 입니다.

다음30절에 나타난 단어들 역시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해야 뜻을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주님이 구름타고 오신다는 표현에서도 ‘구름’ 은 수증기로 이루어진 ‘자연계의 구름’ 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출16:10,왕상8:10)’ 를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 입니다. 행1:9~11의 말씀을 보면 주님이 승천하심을 지켜본 제자들이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 흰옷입은 두 천사가 책망하기를 어찌하여 주님이 자연계의 하늘로 올라가신 것으로 생각하여 위를 쳐다보고 있느냐고 하면서, 주님께서는 물질 공간인 하늘로 서서히 올라가시다가 저 높은 꼭대기 하늘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물질을 초월하여 영계의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가르친다.이러한 ‘구름’ 의 영적의미는 신비스러운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인 것 입니다. 신비스러움이란, 인간이 쉽게 보이는데로 생각한데로 알수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주님이 임재를 본다고 한 표현 역시 영적,해석을 요하는데 여기서 본다고 하는 헬라어 동사는 호라오 로서 눈으로 물질을 보는 것에도 사용하지만 마음의 눈이나 영계의 눈으로 본다고 하는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 입니다. 이는 마26:64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라고 대제사장에게 말씀 하실 때 똑같이 사용된 말 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주님을 죽이겠다고 앞장서는 대제사장같은 자가 하나님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보는 즉시 죽어버릴 것 입니다. 여기서 본다고 한 것은 주님의 심판의 날에 주님의 심판하시는 행위를 통해서 마음의눈, 영계의눈으로 성부 하나님과 우편에 계신 주님의 엄위를 보리라는 뜻 입니다.

행7:55~56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라는 말씀에서도 스데반이 돌로 맞아 죽기 전에 성령의 감동케 하심에 따라 영계의 눈으로 성부 하나님과 주님을 보고 감격하여 외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9~31절 말씀을 이상에서 살펴본 바처럼 영적으로 해석하지않고 이를 만일 문자적으로 본다면 이는 동그런 지구에서 일정 지점으로 내려오시는 주님을 일시에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약속을 하고 미리 대기할 수도 없는 것 입니다.

계속해서 32~33절을 보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가리킴니다. 즉, 교회의 세력이 어느정도 커져가는 것을 보면 그 때가 심판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라고 가르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 국가로 보고서 1948년5월14일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무화과나무가 연해져서 여름이 가까워졌다고 하면서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주장했으나 벌써 반세기라는 시간이 흐름으로 해서 그 허황됨은 이미 드러났으며, 이를 근거로 주님의 재림의 시기를 계산해 내는 이단들도 속출하였다는 사실도 있었습니다.

한편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이라는 말씀은 앞에서 예언하신 모든 징조를 총칭하는 것이지, 무화과나무의 비유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by X-friend | 2012/12/28 12:0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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