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제사는 왜 안 받으셨을까요?

제사하면 창세기 4장에 아벨과 가인의 제사가 떠오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제사이며 첫 번째 제사이기 때문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후 하나님꼐서 에덴에서 쫓아낸후 그 후손들이 다시 처음 하나님을 만나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제사와 예물은 받으시는데 누구의 제사와 예물은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중요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영원한 삶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4:1~14 내용을 간추려 보면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여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들이 장성한 자가 되어 가인은 농사짓는 자로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 치는 자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물은 열납 하셨는데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가인의 제물이 열납 되지 아니하므로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쳐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말씀을 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의 제물은 열납 하셨는데 가인의 제물은 열납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창세기에서는 왜 아벨의 제사가 더 나은 것 인지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물에 문제가 있었는지 찾아보아도 제물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사법에도 제물중 짐승만 드린 것이 아니라 곡식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히11:4) 아벨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럼 히 11장 1절 이하를 보면서 찾아 가보기로 하겠습니다.
 
 히 11장 1절부터 보면 에녹의 믿음 이야기부터 쭉 나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까지 믿음의 조상들 이름이 나열되어 오다가 13절부터 16절 까지 무엇을 믿었는지 그 결과가 나옵니다.   
16절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믿음으로 하늘나라를 기다리며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본향인 하늘나라를 가본적도 본적도 없지만 믿음으로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한 성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본향이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것은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삶을 말합니다.
 
 나그네라는 단어에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창4:2에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 이었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의 생업은 농사짓는 자였습니다. 농사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아벨의 생업은 목축업이며, 목축업은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풀을 따라 이주 하면서 소나 양, 말 가축을 가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았던 유목민을 말합니다.
두 사람의 생업에 차이점은 가인은 한 곳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삶이었으며 아벨은 이 땅에서 정착한 삶이 아니라 떠돌며 사는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다시 해석하여 볼 때 가인은 세상 사람처럼 이 땅에 가치관과 소망을 두고 사는 자였으며, 아벨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갖고 이 땅에서는 잠시 사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신앙인의 삶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업은 삶의 가치관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창46:31~34과 창47:1~9까지 보면 애굽왕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의 생업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그들은 목자라고 대답하며 우리와 선조가 다 목축업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네 연세가 얼마뇨 물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 이며 조상들의 나그네 삶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대답하고 바로에게 축복하고 나옵니다.
 여기서 야곱은 자기 생애와 조상들의 생애도 나그네 길이라 부릅니다.
 평생에 걸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의 생애가 이 세상에 잠시 있다 떠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삶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도 요셉도 아벨도 믿음의 조상들도 우리도 고달픈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소망을 버리고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를 믿음으로 기다리며 소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제사의 제물은 하늘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유했다 해도 잠시사는 나그네 삶이요, 궁핍하게 살았다 해도 잠시사는 나그네 삷인 것입니다. 건강할떄도 있으며 질병으로 고달풀때도 있었지만 이것 역시 잠시 사는 나그네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억울에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한때 행복했다 해도 진정한 복이 아닌 것은 잠시 스쳐가는 나그네 삶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할때도 있지만 불행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 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조상들은 힘들고 고달픈 험악한 세월을 보내도 그들의 믿음은 본향인 하늘나라를 사모하여 기다리는 것이였습니다. 나그네 삶이 고달퍼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믿음으로 이기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이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기쁘게 받으시면서 한 성인 하늘나라를 예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믿음으로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물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by X-friend | 2014/10/10 12:00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xlkh.egloos.com/tb/310958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