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2일
Love is Blue 인가요?
Love is Blue 인가요?
(슬픈사랑)
(슬픈사랑)
우리가 대학다닐 즈음 요즈음과는 사뭇 달라진 광경이지만 어둠침침한 음악다방에 죽치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거무축축하게 염색한 야전 잠바를 입은 대학생들의 모습은 한없이 심각하고 무겁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레지”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아마 레이디(lady)의 와전인 것 같습니다. 다방에서 차를 나르는 아가씨들을 부르던 이름이였습니다. 커피라면 요즈음과 같은 향긋한 내음새 나는 원두커피를 갈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꿈이였습니다. 커피라면 모두 인스턴테 가루 커피 그것도 뿌연 연유를 집어 넣고 설탕을 있는대로 네다섯 숟갈씩 퍼넣고 먹었으니 사실 커피맛이라기 보다는 커피를 빙자하여 당분을 섭취하는 쾌감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빌비리한 대학생들은 단것을 섭취할 길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 당시 점심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되었습니다 .그것은 음악이 있었고 레지 아가씨가 있었고 막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신데렐라의 기다림이 있었기에 배고픔을 커피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나의 Love is Blue는 그 시대 이야기입니다. 어느 봄날 버스 안에서 깊은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눈과 투명한듯한 하얀 피부를 가진 신데렐라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뛰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말을 걸자니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자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따라가기로 마음 먹고 그녀가 내리는 남대문 시장까지 가서 따라 내렸습니다. 그녀는 쇼핑을 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물건의 디자인과 색상을 도와주고 물건도 들어주자 상인 아줌마와 점원 아가씨는 내가 그녀의 애인인줄 알고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는 둥 그녀가 색상에 대하여 망설이면 나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렇게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데 글쎄 데이트 자금이 없는 겁니다.
나는 할 수 없이 종로5가까지 그녀를 데리고와 다방에 앉혀 놓고 급하게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사촌형에게 달려가 통사정을 했습니다. 나중에 몸으로 때우기로 하고 자금을 얻었습니다.
그 당시 자주 가던 종로 2가 삼일빌딩 뒤편에 있는 민속촌 술집이 있었는데 그 곳에 가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카뮈의 이방인 대하여 대화를 하였는데 실은 철학하며 골때립니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 철학과에 다니는 지저분한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 인간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관심을 갖고 또 데이트 할때 써먹기 위해 관심을 좀 갖게 되었지 철학 웃기는 얘기입니다. 내 아내도 연애시절 내가 야구 선수인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야구 보는 것 좋아합니다. 여러분 야구선수나 야구구경 하는거나 그게 그것 아닙니까? 연애시절에는 남자들 뻥이 셉니다. 남자들 하는 말 다 믿으면 실망합니다.
그녀는 그 당시 명지대학 영문과를 다녔고 그녀도 내 뻥에 즐거워 했습니다. 통금시간이(그 당시 오후12시가 통금시간이었음) 다되어 헤어질 때 이름도 연락처도 묻지 않았고 약속 역시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헤어져 가다가 이름은 알고 헤어져야 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불렀고 그녀 역시도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서길래 서로 이름만 알려 주고 헤어졌습니다. “아빠 정신 차려” 아 깜짝이야! 무드 깨지는 구나 지금 생각하면 요새 젊은 세대와 정서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그 당시 젊은이들 순수한데가 많았습니다.
영화 얘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비밀이란 일본 영화에 두 모녀가 친척집에 제사드리러 가던 중에 교통 사고로 중태에 빠집니다. 두 모녀가 위독하던 중 엄마 나오꼬가 운명하면서 딸의 영혼이 엄마 몸으로 엄마 영혼은 딸 모나미 몸으로 영혼이 바뀌면서 남편 헤이스켄이 혼돈을 하지만 확실히 딸 모나미 몸에 아내 영혼이 옮겨 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보이는 딸의 모습 때문에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 나오꼬는 딸 대신 학교도 가고 대학까지 진학을 하여 미팅도 하고 남자 친구도 사귑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헤이스켄은 질투한 나머지 도청까지 하며 훼방을 놓습니다.
남편 헤이스켄도 힘들지만 아내 나오꼬도 힘들어 하면서 부부로서 정상적인 성관계를 원합니다. 그러나 헤이스켄은 보이는 딸의 모습으로 성 관계를 이루지 못합니다. 남편 헤이스켄은 어느날 자기 아내에게 보이는 딸의 모습대로 딸이였음을 합니다. 그럴 경우에 질투할 일도 없고 혼란스러울게 없기 때문입니다.
힘들어 하던 아내 나오꼬는 어느날 딸의 영혼이 다시 돌아온것처럼 행동을 하고 헤이스켄은 좋아합니다. 아내 나오꼬는 딸 모나미 역과 번갈아 가면서 생활을 하던중 남편 헤이스켄과 연애 시절 데이트 하던 장소로 가 이제는 딸의 몸에 다시 올 수 없다고 이별을 합니다. 딸로서 몇 년이 지나 딸 모나미가 결혼을 하고 결혼식이 끝나고 헤이스켄과 딸 모나미가 석별의 정을 나누던중 헤이스켄의 턱수염을 만집니다. 그 습관은 아내 나오꼬가 항상 하던 습관이였고 헤이스켄은 그동안 딸이 아니라 줄곧 아내 나오꼬인줄 알고 줄곧 당신이었군 한마디 하고 딸이 아니라 자기 아내를 시집 보내는 아쉬운 마음으로 끝이 나는 영화인데 애절하고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이런 내용이 문제가 더 될 수 있는 겁니다.
창세기 19:23-28에 나오는 말씀과 비교하여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하나님께서 롯의 가족들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하시면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셨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고 소금기둥의 영적 의미는 소금은 부패하지도 썩지도 않습니다.
바로 영존체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기둥이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자유의지를 빼앗긴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지옥에서는 자기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곳입니다.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영원히 형벌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형벌이 고통스럽다고 내 뜻대로 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롯의 아내가 돌아본 것으로 저주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죄악이 관용한 세상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세상 죄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므로 소금기둥이란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 시간 지적하고 싶은 것은 롯의 두 딸입니다. 롯과 두 딸이 산에 올라 굴에 거하면서 자기 배필 될 사람이 없다면서 자기 아버지와 동침을 하여 큰 딸은 아들을 낳아 모압이라 하였고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암몬 조상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족속들이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들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구원의 반열에 낄 수 없는 족속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딸이 어디서 근친상간에 물들었겠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창19:1-11)에 보면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동성애에 환장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성적 문란이 극에 달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영화, 소설, 책이나 TV, 스포츠 신문, 인터넷 같은 매체를 통하여 우리 영혼을 쇠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때만 해도 이성문제가 순수하였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일본 영화에 나오는 내용처럼 성의 정체성이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끝장면에 자기 딸인줄 알고 결혼을 시키지만 딸이 아니라 자기 아내로 시집보내는 남편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져 있는 성의 정체성 비록 자기 아내 영혼이지만 겉모습은 자기 딸입니다. 부부로서 성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롯의 딸들처럼 근친상관처럼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돔과 고모라 같은 죄 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롯의 아내 같이 그의 딸들 같이 되지 않습니다.
# by | 2008/08/22 16:0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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