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가치관을 가진 자는 뱀 꼬리를 잡아라

하늘에 가치관을 가진 자는 뱀 꼬리를 잡아라


구약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실 때 기사와 표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단편적 능력의 사건만 나타내셨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기사와 표적인 단편적 사건 안에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고자 모세를 부르시고 그의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십니다. 그때 던진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뱀 꼬리를 잡으니 지팡이가 다시 됩니다. 출 4:1~4 에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던 지팡이는 몸을 의지할 때도 있고 맹수나 강도를 물리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모세가 의지하던 지팡이를 사단을 상징하는 뱀으로 만드셨는지, 그것은 너희가 지팡이를 의지하듯 의지하는 것들은 사단의 것이라고 시사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단은 세상 임금입니다. 이 세상 모든 영화는 사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마 4:8~9 에 마귀는 예수님께 나에게 절하고 경배한다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화를 다 주겠다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세상 영화는 사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선교도 하고 전도도하고 봉사하는데 물질도 건강도 있어야하고 의술도 필요하고 지식과 문화와 예능 등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세상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것으로 행복의 기준을 삼고 살기도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너희를 파멸시킬 수도 있고 영원히 사망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 것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세상 것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너희 머리가 아니라 모세가 뱀 꼬리를 잡듯이 꼬리정도로 여기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문화, 철학, 교훈들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재물과 명예와 건강을 머리로 잡고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구원과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 것을 머리로 의지하면서 살던 모든 사람들은 불뱀에 물리듯 죽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사는 자들은 세상 것을 꼬리로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여기고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이 세상 것들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것에 가치관을 두어야합니다.


골 3:1~5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며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 가치관인 재물, 명예, 의학, 지식, 이성 등……. 뱀의 머리를 잡듯이 얻고자 집착할 때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정욕과 탐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뱀’꼬리 잡듯이 가볍게 여길 때 자유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내 은혜가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병 낫기를 세 번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자 내 은혜가 만족하다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 세상 재물, 명예, 의학, 지식, 이성 등……. 모든 것 필요하지만 그것에 가치관을 둘 때 묶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얻기 위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13~23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겨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종류와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니라


레위기 11장에는 여러 가지 새 종류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19절 사이에는 ‘부정한 새’를 기록하고 있는데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독수리나 매 종류같이 죽은 고기를 먹는 새들이며 다른 한 가지는 밤에만 활동하는 새, 다시 말해 야행성 새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종류들은 모두 부정합니다. 독수리와 매 종류의 새는 죽은 고기를 먹는 새들인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사망 곧 죄를 먹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비유로 설명된 사람들은 세상에 가치관을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해 죄를 짓는 불신자들입니다. 또한 부정한 새 중 올빼미, 부엉이, 박쥐…….는 주로 밤에 다니는데 ‘밤’은 곧 ‘어둠’이며 죄를 말합니다. 또 밤에 먹이를 구합니다. 죄를 지으면서까지 얻고자함은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과 황새는 죽은 고기도 먹지 않고 야행성도 아닙니다. 다른 것은 ‘물’ 속에서 먹이는 얻는 것입니다. 지난번 보셨듯이 물속은 사망을 말합니다. 사망에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습니다. 이런 분류의 사람들은 신앙인들이지만, 하늘에 가치관을 두기보다는 세상 것, 이 땅의 것을 얻기 위해 살다보니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나는 정한 새처럼 하나님 말씀으로 하늘에 신령한 것에 가치관을 두고 살아보세요. 새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십자가에서 죄의 삯을 지불하시므로 죄에서, 세상가치관에서 자유롭게 날게 하셨습니다.


엡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벌써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레위기 11:20에는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으라고 합니다.


이 내용도 역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셨는데 믿음을 갖고 하늘에 가치관을 두고 세상 것은 뱀 꼬리를 잡듯이 집착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고 살 때 그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듯이 먹을 수 있는 곤충도 그러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정한 것들입니다. 여기 기록된 곤충은 항상 땅에서 뛰어오르면서 날아갑니다. 그 의미는 땅에다 가치관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뛰어 날아가는 것입니다. 죄에서 떨어져 살고자 하늘에 속한 자답게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늘에 소망을 두고 뛰어 날아가는 것입니다.


날개는 주었는데 날지는 않고 기어 다니는 곤충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하시고 죄에 대하여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게 하셨는데 하늘에 속한 자답게 죄와 떨어지기 위해 메뚜기 종류 곤충처럼 뛰어 날아가야 하는데 바퀴벌레 종류처럼 날개가 있으면서도 죄를 상징하는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애타게 부르시고 설명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경 정체가 그런 내용 아닙니까?


하늘에 속한 자답게 마음껏 땅에 가치관에서 죄에서 자유를 누리십시오. 그런 것들로부터 붙잡히지 마시고 지배하십시오. 하늘에서 땅 아래를 보십시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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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friend | 2008/08/22 16:0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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