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벌거벗은 것으로 그 후손이...

노아의 벌거벗은 것으로 그 후손이...


창세기 9장 20~25절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 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비의 벌거벗음을 한번 보므로 그 후손들이 저주를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너무

가혹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 3:7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몸이 벗은 것을 알고 몸을 무화과 나무로 가립니다. 왜? 가립니까? 자기 자신들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창2:25에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즉 뱀이 유혹하기 전까지는 벗은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는데 범죄한 후 이 두 사람은 부끄럽게 여긴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으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가리고 싶어 합니다. 지금도 인간은 죄를 지으면 가리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양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므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되었지만(창3:22) 죄의 근원인 마귀의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께는 불순종한 자가 되었고 그들은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롬6:16에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순종함을 받는자의 종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말을 들으면 마귀의 종인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 의에 종으로 이르는 것입니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간 안에 죄와 선이 싸우는 갈등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롬7:21에서는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는데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롬7:15~19)


“그 이유는 하나님 말씀따라 하나님의 때에 선악과를 먹었으면 선이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데 죄의 근원인 마귀의 유혹에 빠져 마귀의 말을 들으므로 마귀의 종, 죄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속에 있는 선이 죄를 이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죄의 종이 선을 따라 살 수 있겠습니까? 종은 하기 싫어도 주인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법입니다.


롬7:23에는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지체(육신)속에 다른 법(죄의 법)이 내 마음(영)의 법과 싸워 내 지체(육신)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안에 죄의 법과 선한 법이 존재하는데 육신 속에 거하는 죄의 법이 우리 영에 있는 선한 법과 싸워 죄 속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갈5:19~21절에서는 더 확실하게 육체의 일에 대하여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육체가 하는 일은 이런 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죄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롬7:25절 이하에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법을 섬긴다고 합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원합니다. 그것은 죄가 부끄러운 일이요, 수치스러운 일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육신은 죄를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종이기 때문에 주인인 죄의 법을 섬길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 벌거벗은 육신을 무화과 잎으로 가린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죄인의 모습을 가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화과 잎으로는 아담과 하와의 죄와 허물을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마리 짐승이 죽어야 합니다.


“죄인의 수치와 허물을 가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 주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마리 짐승이 죽듯이 의로우신 하나님이 죽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성육신으로 오시어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의의 옷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가리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 노아의 손자 이야기는 다음으로 -

by X-friend | 2008/10/10 01:2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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