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벌거벗은 수치를 십자가에...

 

 창세기 9장 20절 ~ 25절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노아가 벌거벗은 것은 술에 취하여 분별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자기의 수치와 허물을 드러낸 것입니다. 죄를 드러낸 것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인간의 육신은 허물인 죄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함은 아비노아의 벌거벗은 죄의 허물을 보고 나가 두 형제에게 전합니다.

 함은 안타깝게도 형제인 셈과 야벳처럼 옷으로 아비의 허물인 죄를 덮어준 것이

 아니라 아비의 허물을 퍼트린 것입니다. 그것은 죄를 퍼트린 것입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허물은 죄를 보지 않기 위해 옷을 갖고 뒤걸음쳐 들어가서

 옷으로 덮어주었고 나올때도 아비의 벌거벗음을 보지 않기 위하여 얼굴을

 돌이키고 나옵니다.


 성경에서는 ‘죄’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죄는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하지 않습니까.

 (마5:27~28 엡5:3) 더 성숙한 모습은 남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본문 하반절에 가나안의 아비 함이 죄를 지었는데

 그 아들 가나안이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습니다.


 성경내용을 보아서는 가나안은 아무죄도 짓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5장 12절에서 이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담 한사람이 범죄하므로 그 후손들이 정죄에 이룬 것을 강조하기 위해 죄지은

 함보다는 그 자식이 저주에 놓인 것을 부각시킨 것을 메시지화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 한사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모든 후손이 사망에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망에 놓은 백성를 구원하시고자 개입하시겠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에스겔18:2~4까지 잘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간추려 보면 너희 이스라엘이 속담에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였는데 나 여호와가 맹세하노니 너희가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헤아려보면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다는 것은 아비의 죄로 그 아들이

 이가 시다는 것입니다. 아들까지도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출20:5, 34:7 신5:9에 아비가 우상을 섬기고 악을 범하면 그 자녀 삼 사대까지

 죄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오면(에스겔17:22~24) 범죄하는 그 영혼만 죽는다는 것입니다.

 각자 헤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에스겔 18:20~21)에도 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

 하리니(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의 범죄로 저주를 받아 목이 뿌러져 죽었음)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고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악인이

 죄에서 돌이켜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각 사람이 각자 행한대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이 죄에서 돌이켜

 율법을 지키면 죽지 아니하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롬3:10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다 저주 아래 놓였다고 하고 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롬8:3에서는 살 길이 있다고 합니다.

 율법은 본래 ‘의’를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였으나 인간의 육신으로는

 율법의 요구(의)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의인을 요구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의인된 것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서 의인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의 부활하시므로 그와 함께 의에

 대하여 ‘산’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출20:5에 아비의 죄로 그 자녀들이 삼 사대까지만 죄의

 대가를 치룬다는 ‘기한’을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주에 대하여 기한을 두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저주는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메시아가 오시면

 끝난다는 것을 삼 사대라는 기한 안에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천이란 숫자는 끝이 없는 영원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크신 사랑을 간직하며 사는 나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by X-friend | 2008/10/22 16:1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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